복수는 나의 것 7

복수는 나의 것 7


well your faith was strong but you needed proof 
you saw her bathing on the roof 
her beauty and the moonlight overthrew you 
she tied you to her kitchen chair 
she broke your throne and she cut your hair 
and from your lips she drew the hallelujah 




 

지미 핸론은 하우스 리조트의 발코니에서 묽은 위스키를 홀짝이며 일출을 바라보았다.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다. 너무 많은 후회가 있었고. 그가 회한에 잠기는 것도 잠시, 뒤에서 경쾌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그 소리의 주인이 배달부라는 것을 알았다. 종종 NCR 대사관이나 캠프 맥캐런에서 온 소포를 배달하곤 했던 여자였다. 멀끔한 얼굴에 차가운 눈빛, 그리고 비상한 말솜씨를 가진, 한번 만나면 잊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녀가 머리에 총을 맞고도 다시 일어섰다는 이야기는 한 때 모하비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핸론은 그 기이한 사건이 사실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녀는 지상 위의 사람이라는 느낌보다, 배달부 그 자체로 그에게 각인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하나의 표상과 같은 존재. 그것이 그녀였다. 하지만 반가운건 반가운 거였고, 그는 격려를 담아 배달부에게 일장연설처럼 긴 인사를 건넸다.


“서부에서는 이런 것들을 좀처럼 볼 수 없지. 아, 호수 말이네. 자연적이든지 인공이던지 간에 아무튼... 우리 NCR은 댐 사용에 태만했었거나, 모든 수자원을 고갈시켜버린 것이야. 오웬즈, 이사벨라, 샌 루이스... NCR은 보유한 지하수층을 모조리 사용해 버렸고, 남은 건 많은 진흙과 먼지뿐... 수면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것은 참 오묘한 기분이군. 처음엔 익숙치 않았지만 지금은 그려러니 하지. 그런데 자네가 여기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니 이젠 익숙해져 보이는군. 그것이 현 레인저의 삶이야. 동부를 주시하는 것. 자네가 바로 소문의 그 배달부로군. 라디오 수신에서 누군가가 굿스프링에서 자네에게 위해를 가했다면서? 모하비 황무지는 선량한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건 다치게끔 하지. 하지만 자네가 NCR에게 수많은 도움을 준 것에 경의를 표하네. 자, 용무가 무엇인가?" (*인 게임 발췌)


“항상 말이 많군. 핸론.”


“거 참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자네는 똑같은 소리를 했었는데, 머리를 다친 이후라서 그런지 맹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네. 본부에서 여기까지 뭐라도 배달한다는 소식을 줬으면 미리 자네에게 따뜻한 크럼파이라도 내주는 거였는데 말이야. 하지만 불행히도 너무 일찍 찾아왔어. 아침식사를 하고 가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거야.”


배달부는 물끄러미 핸론을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얼굴과 톤에서, 그는 그녀가 잡담을 나누려고 온 것이 아니란 걸 눈치 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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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들어가겠어. 거래를 하지. 지미 핸론.”



얼마 후, 핸론은 아까와 같은 자리에 앉아 저 멀리 소실점으로 사라져가는 배달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핸론의 조작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배달부가 요구한 것은 뜻밖에도 조슈아 그레이엄에 대한 정보였다.

사무실의 칙칙한 벽에 기댄 배달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군단의 후버댐 침공에 대해서 이야기해줘. 되도록이면 자세하게. 말파이스가 어떻게 싸웠는지, 어떻게 무너졌는지. “



핸론은 카라반에 능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상대방이 패를 숨기고 있다는 것 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수십 년간의 레인저 복무 생활이 가져다 준 직관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어차피 그녀에게 순순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 거래에서 그는 명백하게 을의 위치에 서있었다.


말파이스, 조슈아 그레이엄은 전쟁의 신이 빚어낸 피조물같았지. 폭력이 지상에 두발로 걸어다닐 수 있게 된다면, 꼭 그 같은 모습이 될 거라고 줄곧 여겨왔어. 후버댐에서 그는 NCR레인저들의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로 선봉에 서 있었지. 그의 얼굴에서 파악해낼 수 있는 건 차가운 눈에 서려있는 분노 뿐이었어.


핸론은 숨을 골랐다. 말파이스의 살기등등한 형상을 떠올리기만 해도 미약한 현기증이 났다.


아직도 우리가 어떻게 그를 꺾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어. 신의 축복이라든가, 말파이스의 자만심과 광기가 스스로를 삼켜버린 걸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걸 자네에게 알려주겠네. 그날 밤, 우리가 대부분의 전선을 잃고 후버댐 너머로 후퇴한 채 간신히 2일 동안 교착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어. 말파이스가 소수의 병사들을 데리고 전선을 이탈했다는 보고를 받았지. 그리고 그는 보울더시티로 군단병들을 일제히 보냈어. 우리에게는 명백한 기회였어. 우린 보울더 시티를 폭발시켰어. 말파이스가 없는 군단은 우왕좌왕했고 그대로 그들이 전선을 추스릴말미를 주지 않은채로 NCR 트루퍼들이 밀고 들어가자, 그들은 후버댐을 맥없이 내주었어. 그게 다야.


 그가 어째서 전선을 이탈하는 무책임한 짓을 저지른 건지는 모르겠네. 확실한건, 말파이스가 현장에 있었다면, 보울더 시티에서 군단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란 거야. 

뭐,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 황무지에서 한두 개인가?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그가 시저에 의해 불태워진 채로 그랜드 캐니언의 심연으로 떨구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말파이스가 자신의 몰락을 의도적으로 자초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가졌었지. 하지만 정답을 찾아내려면, 그에게 직접 묻는 수밖에 없을 걸세. 그리고 그 건 쉬운 일이 아닐거야. 그가 살아있느니 하는 소리가 군단에서는 도는 모양이네만, 살아있어봤자 멀쩡한 꼴이겠는가? 아마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을 것이고, 나라면 그런 존재를 만나고 싶지는 않을걸세.

자네가 무엇을 찾고 싶어하는 건지는 모르겠네만. 이게 정말 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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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론은 미지근해진 위스키로 지친 성대를 축였다. 쓰고 맹한, 몽롱한 맛이 혀끝에서 맴돌다가 목으로 흘러들어갔다. 라디오에서는 미스터 뉴베가스가 즐겨 선곡하는 페기 리의  “자니 기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배달부의 표정에는 어떠한 미세한 변화도 없었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것 같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그녀에게 핸론은 잠깐 호기심을 느꼈지만, 이내 그것을 폐기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타인에 대한 도가 지나친 오지랖이나 연민은 황무지에서 제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핸론은 문득, 뒷주머니가 허전한 것을 느꼈다.


제기랄, 저 여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레인저 세쿼이아까지 대가로 가져간거군.




하지만 그것이 배달부의 계산방식이라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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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단은 괴물이야."

".............."

"난 당신네들을 전부 경멸해."


캐시가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말파이스의 손을 거칠게 후려쳤다. 

"가까이 오지마."


혈육과의 석연찮은 재회 이후로 캐시의 퓨즈는 완전히 나가 있었다. 분노를 삭히던 그녀는 자신의 막사 구석에 놓여있던 라디오를 들어올린 다음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라디오가 산산조각 나면서 부서졌고 부품들은 이리저리 튀었다. 말파이스가 구해온 신다사이저 수신기가 찌그러졌다. 


"캣."

"내 이름 부르지마. 다시 내 이름 부르면 뛰쳐나갈거야."

"그렇게 놔둘 것같나?"

"여기서 소리지르고 발광하면 천하의 말파이스 군단장님의 얼굴에 먹칠은 할 수 있겠지. 병사들에게 끌려나간 다음에 참수 당하거나 십자가에 못박히면 서로 좋은 일 하는 거 아닌가?"

"말 조심해.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마."

"당신은 그렇게 말 할 자격 없어."

캐시는 격한 구토감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사라져가다가, 거꾸러지는 매그너스의 뒷모습을 생각했다. 이제는 루키우스가 된 나이젤의 머리에 세겨진 문신도 떠올랐다. NAM GLORIA.



"당신이 진정으로 날 사랑한다면, 이런 곳에 놔두지는 않을거야."


"서부의 무자비함을 과신하는군. 밖에 발을 내딛는 순간 너는 죽임 당할 거다. 군단의 울타리 안이 그나마 안전한 걸 모르겠나."


"상관 없어. 최소한 인간으로 살다 죽는게 나아."



말파이스의 가면 너머의 조슈아 그레이엄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느끼며, 남자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생각해보면 오래 버틴 것이었다. 캐시 베넷과 조슈아 그레이엄의 기만이 한 쌍처럼 어울려서 이루어낸 한 때였다. 캐시가 고개를 들어 현실을 바라보면 간단히 깨져버릴, 그런 연약한 평화였다. 





"진정되면, 다시 내 막사로 오도록."





말파이스는 막사 밖으로 나가자마자 보초병들에게 캐시가 '허튼 짓'을 하지 않도록 감시할 것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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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온에 온 것을 환영하네. 좀 더 좋은 첫인상을 남겼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하얀 다리 부족이 우리를 앞질렀더군.”




분필자국따라-자신을 구해준 부족 청년의 이름이었다-의 인도를 받아 들어간 동굴은 어두컴컴하지만 따뜻해서 안도감을 줬다.  마치 그녀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년시기의 기억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곳인 것 같았다. 배달부는 향초와 건 파우더 냄새를 잔잔하게 코 끝에서 느끼며 계속해서 길고 긴 동굴을 걸어 들어갔다. 마침내 동굴의 막다른 곳에서 부족장 격인 남자와 마주했을 때, 그녀는 그가 바로 자신이 찾던 소문의 불탄 남자임을 직감했다. 말 그대로 불에 탄 남자였다. 온 몸을 붕대로 감싼 남자는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45구경 권총을 정리하고 있었다. 해피 트레일 상단이 공격 받은 것에 대해서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는 불탄 남자의 목소리에는 엄숙함이 깃들어있었지만 유창하게 위로의 말을 내뱉는 동안 그는 배달부를 쳐다 보지도 않고 있었다.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격조 있는 옛날의 음률과 어휘들에서 배달부는 근원 모를 미약한 향수를 느꼈다.



그녀가 감상에 빠져 침묵을 지키자 남자가 고개를 돌려 여자를 쳐다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고 배달부는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이 자이온의 하늘처럼 파랗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창백한 불꽃같다고, 배달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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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당신은 뉴가나안에 위치한 2층 짜리 목조 주택에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레드 스태그 고기를 구우면 여자가 침실에서 비척비척 걸어나와 당신의 등에 기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연결되어있던 몸에서 온기가 뿜어져나온다. 당신은 조용히 웃지만 그것을 여자는 알지 못한다. 레드 스태그 스테이크에 전쟁 전 향신료를 뿌린 아침이 완성되면 당신과 여자는 2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깨운다. 당신과 똑같은 검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여자 아이와, 당신과 여자를 반반씩 닮은 남자아이이다. 아이들은 고기의 냄새를 맡고 환호성을 지르며 계단을 빠르게 내려간다. 조심하라고 여자가 주의를 준다.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씻고 나면, 당신과 여자는 하루의 일을 시작한다. 여자는 마을 사람들의 농기구와 무기를 고쳐주고, 당신은 뉴 가나안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여자가 하는 일은 당신에게는 신비의 영역이다. 전쟁 전의 기술이 그녀의 손끝에서 새로운 형태로 완성된다. 여자는 모르몬을 믿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품성과 실력에 기꺼워한다.


일이 끝나면 당신과 여자는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여자는 자랑스럽게 자신이 시큐리트론을 고친 일을 이야기한다. 아마 집사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여자의 말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른다. 당신은 그 아이디어가 석연찮지만 알지 못하는 일이기에 입을 다문다. 당신이 성경과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졸음을 참지 못한다. 여자는 그걸 보면서 깔깔 웃고, 당신은 어쩐지 매우 부끄럽다. 하지만 졸음을 참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당신도 웃고 만다. 


밤이 되면 당신과 여자는 길게 사랑을 나눈다. 정사가 끝나면 당신과 여자는 서로의 어깨죽지에 고개를 파묻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여자는 당신의 귓가에 속삭인다.





"잘자요, 조슈아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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