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복수는 나의 것 11

블랑시 2017. 12. 12. 23:06






나는 미동도 하지 않는 남자한테 다가가, 그의 붕대감긴 손을 쥐고 내 뺨 위로 가져다 댄다.



남자의 손은 어떤 이들에겐 두려울 정도로 크고 억세다. 마디가 굵고 손가락도 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다. 정확하게 할 일을 할 줄 아는 근육. 우아한 형태의 뼈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붕대에 감겨 잘 보이지 않는 그 아름다움을 촉각으로 느낀다. 조슈아의 손은 붕대 너머로도 뜨겁고, 난 그의 말(“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더 강했기 때문에-“)을 진심으로 믿는다. 남자의 검은 엄지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내 눈가 밑을 만진다. 까슬까슬하다.




“날 증오하나요?”



“아니.”





남자의 손가락에 감겨있는 붕대가, 내 눈물로 젖는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일렁거리고, 그가 점차 내게로 다가온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뒤에 내 입술에 닿는 붕대의 꺼슬꺼슬한 감촉을 느낀다. 조슈아는 다른 손으로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는다. 우리는 그렇게 계속 서 있다. 내 눈물인지, 그의 것인지 모르지만, 조슈아의 붕대가 아주 조금 젖는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울지 못했다.




나는 그날 밤 그의 옆에서 잔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과, 살아있는 사람들, 앞으로 이 저주받고 축복받은 땅 위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자기 전에 우리는 제레미 캐시디와 제레미 그레이엄을 위해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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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다리 부족 병사들을 하나 둘 상대하고, 그들의 캠프에 당도해서 상황을 정리한다. 소동이 일어나고, 나는 다급하게 외친다.


“조슈아. 멈춰요. 우리가 이겼어요. 다들 항복했다구요.”



조슈아의 손이 떨린다. 그는 부족장으로 향하는 총구를 거두지 않는다.



“조슈아!”



상처 위의 소금-나는 그 이름의 연원을 안다-이 부족어로 내게 말을 한다. 정확하게 알아 들을 순 없지만, 나는 그가 목숨을 구걸하고 있음을 파악한다. 무릎 꿇은 상처 위의 소금이 나에게로 기어오자 조슈아가 큰 소리로 외친다. 야수의 울부짖음 같이 자이온을 울린다.


“그대로 있어!”


“조슈아. 조슈아 그레이엄. 진정해.”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가 조슈아 그레이엄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는 지금 말파이스 군단장이고, 불탄 남자이다. 허울 좋은 신의 가면이 벗겨지고, 그의 본 모습이 나온다. 나는 그 모습을 안다.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차분하게 그를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조슈아, 당신은 벌써 승리했어요. 둘러보라구요. 이놈을 죽일 필요는 없어요.”


“난 저 놈에게서 마땅히 받아내야 할 빚을 받으러 왔다. 그리고 저 놈은 우둔한 짐승마냥 벌벌 떨고 있지.”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당신의 믿음이 옳다면, 저 놈은 언젠간 죄값을 치르게 될 거에요. 슬픔 부족이 이런 것까지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심판의 도구가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용서하는 것도, 복수하는 것도 당신의 몫이 아니에요. 적어도. 당신은 아니에요. 당신의 손에 묻은 피의 무게를 정녕 모르겠어요? 그것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다시 잃고 싶어요? 무고한 사람들이 스러지는 걸 원해요? 그건 심판이 아니야. 말파이스, 당신의 또 다른 악업일 뿐이야. 그러니, 정신차려. ”


모두가 경악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조슈아와 나만이 있는 것 같이 여겨졌다.

 


조슈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칠고 슬픈, 나를 눈물짓게 하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난 놈들이 내게서, 내 가족...내 아들에게서 빼앗은 것을 이 생에서 똑같이 빼앗고 싶다. 난 놈들이 고통받고, 공포와 고통 속에서 죽어버리길 원한다. 난 복수를 하고 싶다. 그리고 그 복수를 오롯이 내 행적이요, 신의 분노라고 부르고 싶다. “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방울 몇 개가 떨어지고 있었다. 공포와 긴장, 죽음과 분노가 가득한 공기 속에서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캐시, 너를, 네가 나를 죽여도. 너를 끝까지 붙잡고 싶다. 이 얼마나 늙고 추악하고, 썩어빠진 생각인가. 내 마음속에 항상 존재하는, 열기와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불꽃을, 너를........ 나는 영원히 지고 가고 싶다.”



일각이 여삼추였다. 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라. 돌아가라. 어서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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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온을 떠나기 전날 밤. 나는 그와 잔다. 그가 붕대를 벗으면서 경고한다.


“썩 멋진 꼴은 아닐거야.”


“내가 뭘로 보여요?”


“하.”





그가 입 주변의 붕대를 풀자 화상에 짓무른 입가가 나온다. 나는 지체 없이 그의 입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대고, 온기를 느낀다. 여전히 그의 입이 거칠고 뜨겁고, 슬픈 것을 확인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키스를 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자는 조끼를 벗는다.




나는 남자보다 빨리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서 말한다.


“원한다고 말해요.”


“…………….”


남자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한다.


“지독하게 원해. 매일 매일 불에 타 죽어도 괜찮을 정도로 원해.”




매일 당신 생각을 했어.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기도문에서 천국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당신과 함께 하는 순간을 떠올렸어. 신과 천사, 성인들의 얼굴에서 당신을 봤어. 나는 악마였어. 사탄이었어. 유다였어. 당신이 우주정거장 이야기를 할 때, 옛날에 유행하던 드라마와 쇼팽이라는 사람의 곡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당신이 슬픔으로 지쳐있을 때, 당신이 기쁨으로 소리지를 때, 그 모든 순간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어. 나를 죽이는 건 당신이어야만 하니까 죽지 않았어. 살아있었어.




남자가 나를 채울 때, 그것은 더 이상 나를 놓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느껴진다. 나는 기꺼이 그의 소유욕을 내 소유욕과 함께 섞는다. 우리는 계속 키스하고, 애무한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신음하는데, 그 소리가 그의 으르렁거림과 같이 공간을 울린다. 그의 붕대가 내 손바닥 위로 떨어지고 있는데도 조슈아는 그것도 모르는 채로 내 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는다. 나는 붕대에 감긴 그의 뒤통수에 손을 얹는다. 짙은 머리카락 대신에 붕대의 결과 결 사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다음 날 새벽, 나는 다니엘이 구해준 지도를 가지고 자이온을 떠난다. 나는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조슈아의 눈길을 느끼지만 뒤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모하비로 걸어나간다.







끝내야 할 일이 있다.

이루어져야 할 폭력이 있고.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왜냐하면

복수는 나의 것이기에.